생각하기를 반투명한, 단순히 한겹으로 완성되는 그런 것이 아닌 맑고 투명한 것의 무수한 겹침으로 완성되는 것. 무수한 잎을 가진 버드나무 잎. 그것들을 옆구리에 끼고서 자신을 늘어뜨리는 무수한 얇은 가지들. 다시 가지들을 분수처럼 자유롭게 놓아주면서도 견고하게 다잡고 있는 서너개의 굵은 줄기. 해가 다 떨어진 늦여름의 어느 밤. 바람은 느리면서도 부지런히 공간 사이를 오갔으며 버드나무 가지와 잎들은 그 흐름에 맞춰 부드럽게 몸을 흔들었다. 스산했다. 그 분위기는 단순히 어떤 정언적인 단어로 정의되어 질 수 없었다. 하늘은 겉으로 보기에 거의 짙은 회색으로 보이는 자줏빛과 푸른 빛을 띄고 있었다. 여러 승용차들과 길가의 가로등으로 그 밤은 그리 어둡지 않았으나 하늘 만큼은 그 빛들을 다 잡아 먹을 기세로 어두운 공기를 늘여뜨렸다. 버드나무 아래로 걸어들어가 그것을 처올려 보는 고아경은 명확하나 애매모호했다. 그 어떤 하강의 느낌. 그 순간 절대 천지가 개벽할 일이라곤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있었으나, 그럼에도 느껴지는 폭풍우의 느낌. 비도 아니고 천둥도 아닌 무언가가 나를 휩쓸고 내려가 땅 속으로 박혀 반대로 몸을 통과해 나갈 것 같은 느낌.  그 강한 느낌에 비해 버드나무의 움직임은 너무나 미약하여 계속 올려다 볼 수 밖에 없었다. 왜냐면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디가 버드나무고 어디가 하늘인지 알아차릴 수 없었기 때문에. 명확한 선이라곤 존재하지 않아서 그냥 하나의 것으로 보였다. 더군다나 그 버드나무의 큰 덩어리를 나의 눈, 한곳에 바로 온전히 담을 수가 없어서 그것을 온전히 인지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았거니와 별로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올려다 보는 그 덩어리의 형체는 토사물 같았다. 해일의 모습도 떠올랐으며 하늘의 층적운 같기도 했다. 아 그때 토한다의 느낌을 처음 받은 그 때, 한참이나 그 단어를 곱씹으며 집으로 걸어갔다 그 태도가 좋았다. 편하게 대할 수 없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자연스런 과정. 조용하지만 우레와 같았던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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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존재하는 사계절에서

거의 대부분을 여름 겨울이 차지하는 이계절로 바뀌어 가고 있다.

 

여름의 야외는 너무 더워 불편하고 실내로 들어오면 곧장 에어컨들로 시원해지기는 하지만

서둘로 그 기계들이 만들어낸 공기 때문에 머리가 아파온다.

겨울의 야외는 너무 추워서 또 불편하고 실내로 들어오면 히터들의 열기로 금새 아늑해지기는 하지만

여름과 마찬가지로 다시 몸이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